인천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바다가 생각납니다. 인천항을 비롯해 월미도와 연안부두, 송도국제도시, 소래포구처럼 바다와 관련된 장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인천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은 지금은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이름 속에는 바다가 남아 있는 인천의 지명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분명 바다와 가까운 도시인데, 지명에는 바다와 갯벌을 이야기하는 흔적이 남아 있지만 실제 그곳에서는 더 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과거 인천의 해안선은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고 구불구불했습니다.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들어왔고,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갯벌에서 조개와 낙지를 잡고, 바다에서는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작은 포구에는 배가 드나들었고, 바닷가 마을에서는 어업과 염전이 중요한 생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천의 해안 풍경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항만을 만들고 산업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바다를 메웠고, 주거지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갯벌을 육지로 바꾸었습니다. 특히 송도국제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매립사업은 인천의 해안선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인천시 자료에서도 송도 갯벌을 매립해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 1994년 시작됐으며, 현재의 송도국제도시가 과거 광활한 갯벌 위에 조성된 도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다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요?
놀랍게도 그 흔적은 지명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선 곳의 이름에서 과거의 포구를 발견할 수 있고, 도시 한가운데에서 옛 바닷가 마을의 이름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호구포에는 정말 바다가 있었을까?
인천에서 ‘지금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바닷가 지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호구포입니다.
호구포는 현재 인천 남동구 논현동 일대에서 만날 수 있는 지명입니다. 지하철역 이름으로도 익숙한 곳이지만, 처음 이름을 들으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자로는 ‘虎口浦’라고 씁니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호랑이의 입처럼 생긴 포구’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순우리말로 ‘범아가리’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인천시가 소개하는 호구포의 지명 유래에 따르면, 이 일대의 해안선 자체가 바다 쪽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간 모양이 호랑이의 입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지금의 호구포를 보면 도저히 ‘포구’라는 느낌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주변에는 아파트와 도로, 공업지역이 자리하고 있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닷가 풍경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지도를 펼쳐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918년 제작된 지도에는 호구포 일대의 해안선이 실제로 호랑이의 입처럼 안쪽으로 들어간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후 1920년대 남동염전이 조성되면서 해안선의 모습이 달라졌고, 이후 남동공단까지 들어서면서 옛 지형은 더욱 크게 변했습니다.
즉 호구포라는 이름은 단순히 재미있는 전설에서 만들어진 이름이 아니라, 과거 실제 해안의 모습이 이름으로 남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도 있습니다.
과거 호구포에는 실제로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인천시가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동염전의 수로를 따라 바닷물이 현재의 인천기계공고 앞까지 들어왔습니다. 당시 이 일대 주민들은 바다와 염전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아이들은 갯벌에서 물고기와 조개를 잡으며 놀았습니다.
지금의 풍경만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산업단지가 만들어진 현재의 호구포를 보면 이곳이 한때 배가 드나들던 포구였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
‘호구포’라는 네 글자 안에 과거의 해안선과 포구, 바다를 오가던 사람들의 생활이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호구포에는 또 다른 역사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외국 선박의 출몰에 대비해 인천 앞바다의 군사적 방어가 중요했습니다. 당시 화도진이 설치되었고, 승기갯골과 소래갯골에는 각각 호구포대와 장도포대가 설치되었습니다.
현재 호구포근린공원 안에는 2006년 복원된 호구포대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호구포라는 이름은 단순한 동네 이름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바다의 모양과 포구의 기능, 갯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 그리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해안을 지키던 역사까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는 매립과 도시개발을 통해 멀어졌고, 포구의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호구포’라고 부릅니다.
바다가 사라진 뒤에도 이름이 남아 과거의 풍경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송도와 동막, 이름 속에 남은 넓은 갯벌
인천의 바닷가 지명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송도입니다.
지금의 송도를 생각하면 고층 빌딩과 넓은 도로, 국제업무지구와 아파트가 먼저 떠오릅니다. 센트럴파크 주변의 현대적인 도시 풍경은 인천을 대표하는 새로운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송도국제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에는 거대한 갯벌이 있었습니다.
인천시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송도국제도시 매립사업은 1994년 9월 10일 시작됐으며, 대규모 갯벌을 매립해 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과거에는 바다와 갯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송도라는 이름을 보면 ‘섬 송(松)’에 ‘섬 도(島)’를 쓰기 때문에 지금의 도시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정말 섬이 있었나?’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인천의 해안과 섬, 갯벌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생활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송도 매립 이전의 풍경을 기록한 인천시 자료를 보면 지금의 송도국제도시가 들어선 자리에는 동막, 능허리, 척천, 박짓뿔, 고잔 등 여러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갯벌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갔습니다.
특히 갯벌은 단순히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이 드러났고, 주민들은 그곳으로 나갔습니다.
동죽과 가무락, 맛조개와 바지락을 채취하고, 낙지와 숭어, 꽃게 등을 잡았습니다. 그물과 어구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송도국제도시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면서는 이런 모습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와 갯벌의 일부였습니다.
특히 ‘동막’이라는 이름은 현재도 인천 연수구의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동막이라는 이름을 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도로와 주거지역을 떠올리지만, 과거에는 갯벌과 바다가 이어지는 마을의 이름이었습니다.
인천의 옛 해안선을 살펴보면 이러한 지명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과 갯벌, 포구와 염전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갔고, 갯벌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조개를 캤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시간을 시계로 확인하지만, 과거 갯벌 마을에서는 물때가 곧 생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바다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립이 시작되면서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갯벌은 흙으로 덮였고,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뒤로 밀려났습니다. 마을과 어촌계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도로와 주거지, 산업시설과 업무시설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옛 마을의 흔적도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지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동막과 고잔 같은 이름은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잔이라는 이름은 인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과거에는 바닷가와 갯벌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의 흔적을 보여주는 지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인천과 과거의 인천이 겹쳐집니다.
지금은 빌딩이 있는 곳에 갯벌이 있었고, 지금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길이었으며, 지금은 아파트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조개를 캐고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인천의 매립 역사는 단순히 땅을 넓힌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다를 육지로 바꾸면서 도시의 생활 방식까지 바꾼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송도와 동막, 고잔 같은 이름을 볼 때는 현재의 도시만 바라보기보다 그 이름이 만들어졌던 시절의 풍경을 함께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래포구와 염전, 사라진 바다의 기억은 계속된다
인천의 바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래포구를 떠올리게 됩니다.
소래포구는 지금도 바다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인천의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이야기한 호구포나 송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소래 역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소래 일대에는 갯골과 갯벌, 염전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소래습지 일대는 지금도 인천의 해안과 갯벌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천시는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를 수도권 서해안의 갯벌과 천일염 문화의 역사가 남은 공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거 소래와 주변 지역에서 바다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었습니다.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염전에서는 소금을 생산했습니다.
인천의 해안지역에서 소금 생산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햇빛과 바람으로 물을 증발시키고 소금을 얻는 염전은 인천의 해안 풍경을 대표하는 모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인천의 옛 지명을 살펴보면 ‘포구’뿐만 아니라 ‘염전’과 ‘갯골’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래염전 역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의 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는 과거 염전의 흔적과 소금 생산 시설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지는 갯골이 만들어졌고, 염전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로가 이용됐습니다.
즉 인천의 해안은 하나의 단순한 바닷가가 아니었습니다.
바다와 갯벌, 갯골과 염전, 포구와 마을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인천의 해안선은 지난 세월 동안 크게 변화했습니다.
인천시가 소개한 자료에서는 섬을 제외한 인천 해안선 대부분이 매립으로 변화했고, 과거 구불구불했던 해안선이 크게 직선화됐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인천의 해안선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닙니다.
항만과 산업단지, 주거지와 신도시를 만들기 위한 매립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현대적인 해안선입니다.
특히 송도와 남동 일대의 변화는 매우 컸습니다.
송도에서는 광활한 갯벌이 매립되어 국제도시가 되었고, 남동 일대에서는 염전과 갯벌이 사라진 자리에 산업단지와 주거지가 들어섰습니다.
과거 바닷물이 들어오던 곳에 자동차가 달리고, 갯벌 위에서 조개를 캐던 자리에는 높은 건물이 올라섰습니다.
그런데도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
소래포구라는 이름에는 포구가 남아 있고, 호구포에는 옛 포구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동막과 고잔 같은 지명에는 과거 바닷가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소래습지에는 염전과 갯벌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인천의 지명이 가진 특별한 힘입니다.
땅의 모습은 바뀌어도 이름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천을 걷다 보면 과거의 바다를 직접 볼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명을 따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포’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만나면 과거에 배가 드나들던 포구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고, ‘갯골’이나 ‘염전’과 관련된 이름을 만나면 바닷물이 들어오던 공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래된 지명은 당시 사람들이 바라본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호구포는 호랑이 입처럼 생긴 해안의 모습을 이름에 담았고, 소래는 포구와 갯골, 염전의 생활을 기억하게 합니다.
동막과 고잔 같은 마을 이름 역시 과거 이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결국 인천의 지명을 찾아보는 일은 사라진 바다를 찾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재 지도에서 바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곳의 이름이 과거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면 한 번쯤 옛 지도를 펼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도로와 건물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닷물이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갯벌이 어디까지 펼쳐져 있었는지, 배는 어디에 정박했는지, 사람들이 어디에서 조개를 캤는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천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입니다.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해안 공간이 정비되며 바다를 활용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도시가 아무리 현대적으로 변하더라도 과거의 지명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천의 도로명이나 동네 이름을 만날 때는 그 이름을 단순한 주소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 바다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갯벌이 펼쳐져 있었을 수도 있고, 작은 포구에서 배가 오갔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소금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인천은 바다와 도시가 공존하는 현대적인 항구도시입니다.
하지만 그 도시의 땅 아래에는 오래전 바다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가장 작은 단서가 바로 지명입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도 바다의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
인천의 지명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현재의 도시 풍경 너머로 과거의 해안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높은 아파트가 올라선 자리에는 갯벌이 있었고, 넓은 도로가 만들어진 자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호구포’, ‘동막’, ‘고잔’, ‘소래포구’라는 이름 속에는 그 시절 인천 사람들의 바다와 삶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인천의 진짜 바다는 지금 우리가 보는 수평선에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래된 지명 속에 기억된 바다, 그것이야말로 인천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또 하나의 바다인지도 모릅니다.